뇌에게 물어보라


-나는 철인 소크라테스가 뇌간에서 답을 듣고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현대에 살았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여, 당신의 뇌를 알라!"


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부모님은 내가 말을 배울 때부터 툭하면 "나는 왜 이곳에 있어요? 여기서 뭐 하는 거에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나도 그러한 질문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는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그치고 세상에 적응하여 또래와 어울리는 것에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 이 질문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답은 아무리 오래 매달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본질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시들하고 의미가 없었다. 그저 껍데기로만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슴속은 생의 에너지로 들 끓었다. 그것이 적당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운동에 열중했다. 답답하면 할수록 맹목적으로 운동에 매달렸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때 운동을 좋아했던건 천만다행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의 마을을 잡아서 공부를 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셨다. 요즘 같으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라는 진단을 받았을 텐데, 그때는 그런 병명도 없을 때여서 나는 그저 산만한 아이로 여겨졌다.  책상 앞에 앉으면 단3분도 집중을 못 했으니부모님의 마음 고생이 오죽했겠는가. 생각다 못한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일부러 성적이 좋고 폼행도 단정한 친구와 하숙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공부를 하게 만들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내 룸메이트가 된 그 친구는 정말 모범새이었다. 그는 공부밖에 몰랐다.그러나 부모님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그 친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영향을 받은 것은 오히려 그 친구였다. 사실 어떤 사람이건 내 주변에 며칠만 있으면 염세주의자가 되고 말았는데 그 친구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돌아와도 책상 앞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시간에 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대게 하숙방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누워 있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내가 하숙방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누워서 책상 앞에 앉은 그 친구의 뒤통수를 향해 물었다. 


"뭐 해?"

친구는 뒤로 돌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보면 몰라? 공부하잖아"

"공부는 왜 하는데?"

"곧 시험이잖아. 대학고 가야 하고"

"대학 나와서 뭐 하려고?"

"성공해야지"

"성공해서 뭐 할건데?"

"잘살아야지"

"어떻게 사는게 잘사는 건데?


그 즈음에서 친구는 약간 짜증이 난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장난을 거는 게 아니라는 것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화를 내지는 못했다. 친구는 화를 내는 대신 우등생의 본능에 따라 정답을 주려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나름대로 성의껏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뽀족한 대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한참 대답해 보려고 애쓰던 친구는 말을 멈추더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때 내가 물었다.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 뭘까?

"그러는 너는 알아?

"몰라. 그래서 묻는 거잖아"

"그딴 질문은 그만두고 공부나 하자. 그 문제말고도 풀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게 첫 번째 문제잖아. 모든 게 거기에 걸려 있으니까 그 문제를 풀어야 나머지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을거 아냐"

"그만하자"


그 친구는 다시 책상을 향해 돌아앉아 책에 얼굴을 묻었따. 그러나 가끔씩 고개가 천장 구석을 삐딱하게 향하곤 하는 뒷모습만 보아도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매사 그런 식이었다. 나랑은 무슨 대화를 하든 몇 마디만 오가면 매번 똑같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래, 좋아. 근데, 우리는 왜 태어났고 왜 사는 거냐고. 그럼, 결국 죽으려고 공부를 한단 말이야? 죽으려고 먹고, 입고, 마시는 거야?

그 친구는 그게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몇 달 뒤 친구는 하숙을 옮겼다. 나중에는 나와 같이 하숙을 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집중력이 없었던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너무 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남들 같으면 어느 지점에서 내려 놓아야 할 질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니까. 그러나 당시에는 집중을 못 한다고만 생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확실히 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신의 뇌에게 끝까지 물어보라

훗날 나는 그때 내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식의 방법으로 뇌늘 단련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체험이 뇌교육을 정립한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뇌굑육은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는 공부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정말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행심에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만약 지난날 내가 친구에게 던졌던 질문을 당신에게 똑같이 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당신은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나는 뇌의 3층 구조에 빗대어 설명해보겠다. 처음에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지면, 당신은 대뇌피질에 있는 생각이나 지식 차원에서 답을 들려줄 것이다. 조금 더 물으면 변연계 차원에서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답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몇 발짝만 더 나아가면,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은 물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자기 뇌에게 끝까지 물어야 한다. 그때 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 답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솟아 나온다. 그렇게 올라온 소리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다. 온전히 자기 것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뇌간에서 답을 듣고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새로운 차원의 인식은 자신이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에 눈뜨는 것이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이여, 당신의 뇌를 알라!"


뇌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뇌를 안다는 것, 그것은 곧 나를 아는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때 혹은 힘든 일에 부딪히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당신의 뇌로 돌아가 뇌와 대화하라. 진실하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당신의 마음을 전하라. 당신이 호기심으로 대충 하는 말은 뇌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구할 때, 뇌는 에너지 파동을 통해 당신이 염원하는 것을 알아듣게 된다. 


그 에너지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뇌는 당신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당신의 꿈은 뇌 속에 하나의 씨앗으로 뿌려지고, 그것이 차츰 자라서 나무가 되고 마침내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 가슴이 답답해 질 때마다 곧장 당신의 뇌로 돌아가 뇌와 대화하라. 그리고 습관처럼 늘 이렇게 되뇌어라.

"나에게 뇌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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