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순희, 그림: 오승민

-할머니는 공터 구석진 곳에 꾸부정하게 앉아서 폐지를 묶고 있었어.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손놀림은 느려지지 않았지. 다 묶은 폐지 꾸러미를 손수레에 싣고, 할머니는 혹시 하나라도 빠질까 봐 다시 한번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단다. 작고 뚱뚱한 할머니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어. 그런데 정작 놀란 건 종이 할머니였어.작고 뚱뚱한 할머니의 한쪽 눈두덩에 불룩한 혹이 나 있었기 때문이야. 눈동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지. 


게다가 다른 한쪽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은 뿌유스레한 안개 같았어. 그런벱이 어디 있어! 눈에 혹이 난 할머니가 벌그데데한 낯빛이 되어 쏘아 붙였어. 그 소리는 마치 혹이 난 눈에서 나는 것 같았어.섬뜩하고 소름이 끼쳤지.하지만 종이 할머니는 빈 상자를 포기할 수 없었어. 한번 포기하면 다른 곳의 상자나 폐지도 흉측하게 생긴 이노인에게 빼앗길지 모르니까. "내 거여! 이 동네에서 폐지 줍는 노인네들은 다 아는구먼" 하지만 눈에 혹이 난 할머니는 아무 대꾸도 없이 상자를 실은 유모차를 끌고 가려고 했어. 울뚝, 화가 치밀어 오른 종이 할머니는 눈에 혹이 난 할머니의 팔을 잡고는 힘껏 밀어 버렸어. 


벌러덩,눈에 혹이 난 할머니는 힘없이 넘어졌어. 그러고는 앞이 잘 안 보이는지 땅을 허둥허둥 짚어 대다가 유모차를 간신히 잡고 일어났어. 종이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놓였어. 인상도 험하고 자신보다 힘이 셀 것 같았는데,흐므러진 살구처럼 약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내친김에 종이 할머니는 낡은 유모차에 실린 상자를 자신의 손수레로 옮겼어. 그러고는 단단히 울릉댔지.또 내 것을 가져갔다가는 큰코다칠 테니께 조심혀. 눈에 혹이 난 할머니는 힘없이 골목을 빠져 나갔단다.


종이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고물상으로 향하였어. 여전히 땅만 보면서 말이야. 그때 바닥에 실금처럼 갈라진 틈이 보였어. 문득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지. 할머니, 허리를 자꾸 펴시려고 해야 해요.운동도 하시고요. 계속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시면

점점 더 허리를 펼 수 없게 돼요. 종이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어. 허리를 펴고 똑바로 살면 뭐혀.허리가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지면 땅에 납작하게 붙어 버리겠지. 그럼 저 갈라진 틈으로 사라지면 그뿐 아니겠어? 종이 할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어.종이 할머니는 고물상 안으로 들어가 손수레를 세웠어. 


손수레에는 눌러 편 종이 상자와 신문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어. 고물상 주인 정 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손수레에서 폐지를 내려 무게를 재고 한쪽 구석에 쌓았어.그리고 종이 할머니의 손바닥에 만원짜리 지폐 한 장과 천 원짜리 지폐 네 장을 올려 놓았어. 언제나 자신이 일한 것 보다 턱없이 적은 돈이었지. 종이 할머니는 그 돈을 꼭 쥐었어. 아주 아주 가벼웠단다. 부스러기처럼 말이야. 종이 할머니는 다시 손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하였어. 골목에 들어서니 이삿짐 차가 보였어. 맞은편 집에 누군가 이사를 온 모양이야. 머리에 빨간 리본 핀을 꽂은 여자 아이가 골목에서 뛰어 다니고 있었어. 얼굴은 통통하고 보조개가 있었지. 눈은 커다랬는데 쪽빛 가을 하늘처럼 맑았어.


이삿짐 차가 돌아가자, 맞은편 집엣 젊은 여자가 책을 한 아름 안고 할머니한테 다가왔어. "할머니 이거요" 젊은 여자 뒤로 골목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어. " 엄마 , 이거 왜 할머니한테 줘?" "할머니가 종이를 모으시거든. 넌도 다 쓴 종이 있으면 할머니한테 갖다드려" 엄마가 말하자 아니는 신이 난 듯 대답했어. "으응" 다음 날 종이 할머니는 집 앞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폐지를 묶고 있었어. 그때 맞은편 집에서 아이가 쪼르르 달려 나왔어. "할머니,이거요" 다음날 그다음 날도 아이는 다쓴 공책을 가져왔어. 다 쓴 공책이 없으면 문에 붙여진 광고지라도 떼어 가지고 왔단다. 


아이에게는 아주 즐거운 놀이처럼 보였지. 종이 할머니는 아이의 이름이 궁금해졌어. "이름이 뭐냐" "메이요" 그런데 아니는 뭐가 바쁜지 쪼르르 달려가는 거야.아이는 걷는 법이 없었지. 언제나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녔어. 종이 할머니는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어. 다음 날은 아이가 오지 않았어. 종이 할머니는 이상하게 기운이 없었어. 폐지를 주으러 나가야 하는데도 아이가 올까 봐 기다리게 되었어. 누군가를 이렇게 기다린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점심때가 지날 무렵, 대문 밖에서 아의의 목소리가 들렸어. "할머니, 이거요" 종이 할머니는 얼른 밖으로 나갔어. 


그런데 아이는 어느새 골목 귀퉁이로 사라져 버렸어. 종이 할머니는 아이가 폐지 위에 놓고 간 스케치북을 찬찬히 넘겼어. 첫 장에는 아이가 뽀그르르 비누 거품 속에서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어. 다음장을 넘기자 알록달록한 꽃밭에서 아이가 친구랑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지.또 다음 장을 넘겼어. 그런데 이번에는 친구와 싸운 모양이야. 친구와 따로 떨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시커먼 먹구름이 화난 표정으로 비를 퍼붓고 있었어. '메이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네' 종이 할머니는 조용히 웃었단다. 그러고는 마지막 장을 넘겼어.  " 아 "




종이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어. 지금까지 단 한번 보지 못한 세사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야. 약간 찌그러진 똥그스름한 파란 지구, 아름다운 테를 두른 토성, 몸빛이 황갈색으로 빛나는 불퉁불퉁한 목성,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는 태양...

그리고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버섯 모양의 우주선까지. 그러고 보니 하늘을 본지 꽤 오래됐구먼. 하늘을 본게 언제였더라? 별을 본 건 언제였지? 달을 본 건..... 아주 어릴 적에 달을 올려다보면서 '꼭 한 번 달에 가고 싶다'고 꿈꿨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올랐어. 하지만 도무지 이루지 못할 꿈이라 아주 금세 버렸던 기억도 함께 났지.


 종이 할머니는 하늘을 품은 듯한, 달을 품은 듯한 기분이었단다. " 다 늙어 빠졌는데 품고 싶은 게 생기다니..." 종이 할머니는 중얼거리면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허리가 뻐근하게 아팠어. 하늘은 비가 올 듯 회색빛이었지. 그때 톡탁, 빗방울 하나가 뺨에 떨어졌어. 이내 두방울, 세 방울이 떨어지더니 후두두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어. 이런 날은 폐지를 주우러 가지 않아. 대문 앞에 버려진 폐지들이 대부분 젖어 있기 때문이야. 종이 할머니는 스케치북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어. 햇빛이 잘 들어 오지 않아서 단칸방은 늘 어둑했어.하지만 아늑했지.종이 할머니는 스케치북에 있는 그림을 한장 한장 떼어 내어 벽에 붙였어. 그리고 옆으로 누워서 천천히 그림을 보았단다.


가장 마음에 드는건 마지막 장에 그려진 우주 그림이었어. 조이 할머니는 우주 그림을 자세히 보다가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어. 바로 찌그러진 파란 지구 맞은편 위에 떠 있는 포도 모양의 서이야. 포도 알갱이들은 투명한고 푸른빛을 띠며 빛나고 있었어. 꼭 유리로 만든 바다처럼 보였어. 포도 모양의 성 맨 꼭대기에는 두 아이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뭐야. 두 아이 중 하나는 눈이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개구리처럼 커다랬어. 게다가 팔다리는 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빛이었지.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할머니는 그게 뭔지 무척 궁금했어. '희한하다. 다 늙어 빠졌는데 이제 와서 뭐가 궁금하단 말이여' 종이 할머니는 자신을 타박하다가 궁금증을 애써지워 버리고는 돌아누웠어. 그런데도 자꾸만 생각나는 거야. 그 초록색 아이는 누구일까? 하고. 그때였어. "할머니 이거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 종이 할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었어. "우리집에 들오올려?" 아이는 방으로 들어와 벽에 붙여진 자신의 그림을 보고는 팔짝팔짝 뛰었지."와, 이거 내가 그린 그림이다!" 종이 할머니는 우주 속에 떠 있는 포도 모양의 성을 가리켰어.


 "그란디 저건 뭐여?" "우주호텔""우주 호텔이 뭐여?" 우주에도 호텔이 있단 말이여? " "네 우주는 아주아주 넓은 곳이니까요.우주 호텔은 우주를 여행하다가 쉬는 곳이에요. 목성에 갔다가 쉬고, 토성에 갔다가 쉬고....우주여행은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우주 호텔에 들러 잠깐 쉬는 거에요. 외계인 친구를 만나서 차도 마시면서요" "외계인? 진짜 외계인이 있는겨?" 종이 할머니의 눈이 커다래졌어. 그러자 아이는 초록색 아이를 가리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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