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에서 찾은 나의 존재 가치


-나는 쓰레기를 치우면서 처음으로 일하는 보람과 창조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창조의 원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그냥 행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두 차례 낙방한 뒤 길을 잃고 방황할 무렵의 일이다. 부모님을 뵐 면목도 없고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던 그때 '정말이지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상태였다. 우울증과 무력증으로 그날도 느지막이 일어나 돈네를 한 바퀴 돌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리 밑에 수북이 쌓인 스레기더미를 발견했다. 우두커니 서서 그 쓰레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지금은 저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구나. 그러니 이거라도 한번 치워보자. 이걸 하면 뭔가 달라질 것 같다' 그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나와 주위 사람들을 위해 감동할 만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내면의 소리랄까, 하늘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물론 나를 붙드는 반대의 목소리도 들렸다.


'산속도 아니고 길 한복판에서 이걸 치우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흉을 보고 손가락질을 할까? 시험에 낙방하더니 이상해 졌다고 할지도 모른다. 혹시 나를 더럽다고 하지는 않을까? 부모님은 또 얼마나 창피해 하실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내가 사람들을 위해 뭔가 유익한 일은 한다고 생각하자. 이것을 꼭 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겼다.


정말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아주 귀하고 거룩한 일로 느껴졌다. 그때 마을에 쌓여 있던 쓰레기 양은 상당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대로 쌓여 있었다고 하니 그 오물 웅덩이 안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수 없었다. 아무튼 악취 나는 그 웅덩이는 마을에서 골칫덩이였다.


나는 이것을 치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답이 나왔다. 백 년을 묵을 오물이니, 이것만큼 훌륭한 거름도 없다. 나는 인근 야산에 구덩이를 판 다음 거기에 오물을 파묻고 그 위에 호박을 심기로 했다. 나중에 호박이 열면 동네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주고, 가축들에게도 먹일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바로 쓰레기 치우기에 들어갔다.


삽을 드고 한나절 열심히 몇 개의 구덩이를 팠다. 오물을 파묻었을 때 냄새도 나지 않고 정화가 잘 되도록 하자면 파도 아주 깊이 파야했다. 몇 차례 오물을 퍼 날라 부어 보니 그런 구덩이가 족히 100개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힘도 들고, 남은 일도 아득해 보였지만 포기하자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끈질기게 해야겠다는 의욕을 느꼈다. 뭔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구더이를 파고, 오물을 져 나르고, 오물이 채워지면 흙을 덮고, 그 위에 호박씨 하나늘 달랑 던져 놓고, 다시 흙을 덮는 일을 반복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서툰 지게질에 어깨가 모두 가졌다. 까진 자리에 지게를 계속 졌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다가 또 생기고 하면서 피멍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 피멍을 보고 너무 속상해서 나를 붙잡고 우셨다.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어미 속을 기어이 다 파먹는구나!! 하지말라면 안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게 그렇게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꾼이라도 사서 붙여주마" 그런 어머니의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다음날 아침이면 변함없이 지게를 지고 나섰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오물 웅덩이가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지 모르지만 오물을 치우는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절망감 속에서 나에 대한 존재 가치를 일허버리고 방황할 때,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내면에서 들려온 그 소리가 나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호박을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야산은 온통 푸르고 싱싱한 호박덩굴과 잎사귀, 호박꽃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백 년 묵은 거름을 쓴 호박들은 뜨거운 여름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가을로 접어들자 야산에는 집채만 한 호박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뒹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호박 천지였다. 나는 탐스러운 호박들을 지켜보며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십 년 묵은 것 같던 내 내면의 암흑도 조금씩 정화되어 갔고, 삭막했던 내 영혼도 노란 호박처럼 영글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심고 수확한 호박은 온 동네가 다 나누어 먹고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서 동네 소들까지 한철내내 호박을 먹고 살아야 했다. 나중에 들어보지 악취 나는 오물 웅덩이가 없어져서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나느 쓰레기를 치우면서 처음으로 일하는 보람과 창조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냥 한다' 는 게 습관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창조의 원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그냥 행하기만 하면 된다. 비록 태어나는 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고 해도 사는 것은 얼마든지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도 나는 남들이 보기엔 다소 황당하고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선택들을 용감하게 해왔다. 당손 손해를 보는 일일지라도 나의 내부에서 들려온 참된 목소리라면 언제든지 그것을 따랐다. 그 선택이 가장 감동적이고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지 한 번 해보면 창조하는 일도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만큼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경영학에 '전파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무조건 남들 따라가는 타인추종형이 전체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변화를 즐기고 모험을 좋아하며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인 개척자 성향을 지닌 사람이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고, 변화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진정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사람이 20퍼센트, 자기가 살아온 철학, 생활 태도, 방법이 무너지면 인생이 끝장나는 주 아는 고집 불통형이 나머지 5퍼센트라고 한다.


창조하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좋은 아이디어나 생각이 있어도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거나,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휩쌓여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지식과 생각도 몸으로 부딪쳐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새로운 창조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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