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파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뇌 속에 좋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면 좋은 사람이요, 나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면 나쁜 사람이다. 결국 어떤 정보를 수신하고, 저장하며, 발신하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와 운명을 결정한다.


뇌파가 바뀌면 호르몬이 바뀌고, 감정을 비롯하여 의식하여 의식이 달라진다. 그러니 모든 문제는 '뇌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뇌파가 얼마나 혼란과 무질서에 뒤범벅되어 있는지를 잘 모른다. 사실 그 뇌파 상태로 무언가를 명확하게 판단해서 원하는 방향대로 추진해나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뇌파가 혼란스러우면 의식이 제멋대로 산만해지며, 이유 없이 불안하고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목표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은 마치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며 옳게 계산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뇌파는 뇌의 목소리다


현대 과학은 뇌파를 다섯 가지로 나눈다. 불안이나 흥분 상태에서 나오는 감마파, 일상적인 의식일 때 나오는 베타파,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하는 편안한 집중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 그리고 이 알파파보다 더 의식이 이완되어 슬며시 졸음이 올 듯 느긋해질 때 나오는 뇌파가 세타파다. 아예 깊은 잠에 빠지면 우리의 뇌파는 델타파로 바뀐다.


그러니 내가 자주 일컫는 '순수뇌파'는 기존 뇌과학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뇌과학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과학에서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영역의 뇌파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주의 파동이 7.5헤르츠 범위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알파파보다는 조금 아래이며 세타파보다는 조금 위의 주파수 대역에 존재하는 파장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뇌파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우주 의식에도 동조할 수 있고, 교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7.5헤르츠는 갓난아기 뇌파의 주파수 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뇌파를 과학에서는 이떻게 부르는가? 부르는 용어도 없고, 명확한 정의도 없다. 과학자는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만을 연구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제도 있다. 이제까지 명상 상태의 뇌파가 알파파, 불안이나 흥분 상태의 뇌파가 감마파라고 알려졌는데, 오랫동안 수행을 해온 고승들이 참선에 들었을 때 뇌파를 측정해보니 알파파가 아니라 감마파로 나타냈다. 고학자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이런실험 결과가 확인해주듯, 뇌파에 대해서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뇌는 외부의 모든 정보를 '파동'의 형태로 수신하고 이것을 다시 파동의 형태로 발신한다는 점이다. 뇌파는 쉽게 말하면 뇌의 목소리다. 내가 말하는 '순수뇌파'도 뇌의 목소리 중에 하나인 셈이다. 그것은 특정 주파수 대역의 뇌파가 아니라, 뇌가 에너지적으로 통합된 상태의 뇌파를 말한다. 순수뇌파일 때 뇌에서는 좋다. 기쁘다, 담사하다, 평화롭다 등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뇌파진동은 뇌의 에너지 통합을 유도하여 뇌를 순수뇌파 상태로 만든다.








만물은 헌데 어울려 파동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뇌만 파동을 수신하고 발신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고유의 리듬을 가지고 끊임없이 요동치며 파동을 주고받는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 '파동성'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빛이나 소리, 냄새, 형태를 부여하여 보이는 물질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기 아니다. 단지 인간이 오감으로 인식하기에 그런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물질의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이것이 현대 과학이 도달한 양자물리학의 세계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이 불교 경전<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의 이치에 도달하기까지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따라서 겉으로 관찰하기에 만물은 명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되어출렁이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오감의 차원을 넘어서서 엄청나게 배율이 높은 현미경으로 보듯이 사물을 관찰할 수 있다면, 세상은 무수히 많은 소립자들이 서로 동조하고 공명하고 간섭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물결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만물의 경계는 그저 소립자들을 결속시키는 구실을 하는 '에어지장' 이라는 느슨한 울타리가 있을 뿐이다. 그 울타리는 막힘 없이 사방으로 트여 있다.


뇌파진동의 원리나 효과도 이런 우주 만물의 '파동성'에 바탕을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뇌의 에너지가 정화되어 순수뇌파를 발신하게 되면 저절로 탁한 것은 물리치고 맑은 에너지를 끌어당겨 공명하게 된다. 또 발신하는 뇌파가 강력해지면, 주위의 파동을 제편으로 동조시켜서 소망했던 목표보다 더 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뇌파가 약했다면, 주위의 강한 파동에 휩쓸려서 원치 않는 엉뚱한 현실을 창조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만하면 이 책의 부제가 왜 '원하는 것을 이루는 뇌의 비밀' 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뇌파를 타고 정보가 흐른다 


뇌파는 뇌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출렁거림' 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정보의 흐름'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갑자기 '정보'라고 하니까 책에 빼곡히 쓰인 활자 같은 문자 이미지를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정보란 에너지의 속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양자물리학에서 파생된 양자의학에서도 사용하는 개념이다.


양자의학은 크게 육체의 물리적 구조, 정보-에너지장의구조, 마음의 구조,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질병이 비롯된다고 여긴다. 기존의 현대 의학은 질병을 주로 육체적 차원에서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학문이며, 양자의학은 '정보- 에너지장'의 차원에서 질병을 연구한다. 양자의학자들이 질병의 문제를 '정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게된 계기는 이렇다. 러시아의 한 생물학자가 발육 중인 배아에서 발이 될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어 손이 될 부분에 이식해 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식된 조직은 그 배아의 고유 특성대로 발이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특성에 맞게 손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우리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 고유한 에너지장이, 즉 정보망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예도 있다. 여섯 살이 채 안 된 아이에게 뇌 질환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우뇌 전체를 수술로 제거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아무런 장애도 일으키지 않았다. 남아있던 좌뇌가 다시 우뇌와 좌뇌의 역할을 나누어 담당하게 된 것이다. 남아 있던 좌뇌가 우뇌의 에너지장을 기억하고 잇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정보는 건강한가?


사람도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집합체'며 '정보의 집합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뇌 속에 좋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면 좋은 사람이요, 나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면 나쁜 사람이다. 결국 어떤 정보를 수신하고, 저장하며, 발신하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정보도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상호 동조하고 공명을 일으킨다.


현명한 사람은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가려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주위의 정보에 원칙도 없이 무작정 이끌려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정보에 감응하는지에 따라 뇌파가 달라진다. 뇌파는 경험적으로 알겠지만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윗사람이 가진 정보가 개방적이고 조화로우면 구성원들도 활기차고 서로를 존중하게 되며, 반대로 윗사람이 가진 정보가 폐쇄적이고 공격적이면 전체 분위기도 화합하기보다는 서로 경쟁하고 반목하게 된다.


뇌파진동은 뇌 속의 부정적인 신념을 정화하여, 우리가 가진 정보 체계를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좀처럼 바뀌지 않던 나쁜 습관이 저절로 자취를 감추게 되며,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다크 브레인'이 '파워 브레인'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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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약은 뇌 속에 있다  

- 우리 뇌 속에는 이미 최고의 명약이 존재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 '자연치유력' 이라고 한다. 뇌파진동은 움츠러든 그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되도록 뇌를 대청소하고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뇌파진동의 바탕이 되는 뇌의 주요한 운영 원리를 설명했다. 이제는 뇌파진동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물론 당신이 궁금한 게 원리 자체는 아닐 것이다. 뇌파진동이 도대체 어떻게 기적을 창조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론적인 설명에 앞서 최근에 받은 편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저는 스무 살이 넘어서 부터 월경이 불규칙했습니다. 그 증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져 서른이 넘어서는 아예 1년에 한번, 그것도 하루를 채우는 게 고작이었지요. 병원에서는 뇌하수체에 아주 작은 혹이 있어서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안 되는 탓이니, 호르몬제를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월경은 시작되는데 속이 너무 메스껍고 기분이 우울해졌습니다. 결국 약도 끊을 수밖에 없었지요. 병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찾아다녔는데도 별 도리가 없으니 기분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밑져야 본전' 이라는 생각으로 뇌파진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냥 하루 10분씩 한 달 정도 했을 뿐인데 월경이 다시 시작됐거든요!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며칠 동안 계속됐습니다. 병원에서 듣기로 뇌하수체가 의지대로 조절되는 곳이 아니라던데, 의사들도 다들 놀라워합니다. 이건 '기적' 이라고 부를수밖에 없다고하더군요.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된다 


부산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이 여성은, 건강이 회복되면서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으며 삶에 대한 의욕도 되살아났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 해서는 안 된다며, 매일 아침마다 강사들과 함께 뇌파진동을 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뇌파진동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비단 이 여성만이 아니다. 뇌파진동은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브라질, 일본 등 단월드 수련센터가 개설된 세계 각국에 소개된, 세계적인 두뇌 운동법이다. 단원ㄹ드 센터에는 지금도 각양각생의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일본의 한 여성은 자궁근종으로 한 달에 반 이상은 누워 지내야 했다. 주기적으로 아랫배에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말기 암 환자들이 쓰는 진통제도 복용했다. "몸도 몸이었지만, 건강을 잃으니 마음이 절망에 빠져 헤어나기 어렵더군요"라며 그녀는 당시의 암담한 심겸을 밝혔다. 뇌파진동을 매일 30분씩 한 이후로 통증은 일주일 만에 사라지고, 검사 결과 물혹의 크기가 반으로 ㅈㄹ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는 다발성경화증으로 3년 동안 혼자서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던 환자가, 뇌파진동을 하면서부터 증세가 놀랍도록 호전되어 이제는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감동의 사연을 전했다. 


그의 기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주치의는 뇌파진동에 크게 감명을 받아,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들에게 "뇌파진동을 해보라"고 권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뇌파진동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더더욱 궁금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뇌 속에 이미 최고의 명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자연치유력' 이라고 한다. 뇌파진동은 움츠러든 그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되도록 뇌를 한바탕 대청소하고 길을 터주는 역학을 한다.








뇌파진동은 건강법 그 이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뇌파진동은 단순히 몸을 돌보는 건강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건강 때문에 뇌파진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몸이 나은 후에도 계속해서, 오히려 더 열심히 뇌파진동을 하고 있다. 그 까닭은 뇌파진동이 단지 몸만이 아니라 의식에 작용하는 운동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계발을 위한 도구' 로도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뇌파진동을 하면 정서가 안정되고 생각이 또렷해져서 무엇이든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목표에 대한 집중력이 향상되어 흐트러짐 없이 마음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다. 어리석은 습관을 정화하고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수 잇는 마음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중독에 빠져 있다. 중독에는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마약 중독, 인터넷 중독, 게으름에 대한 중독도 있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한 이런 중독들은 뇌에 강력한 습관 회로로 고착되어 있다.


이 습관 회로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의지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표면 의식에서 "에이, 이 놈의 담배를 끊어버려야지!" 하고 결심했다고 치자. 하지만 뇌 속에는 이미 담배 피우는 습관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담배를 안 피우면 뇌에서 어서 피우라고 재촉할 지경이다. 소위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끌려가듯이 담배를 안 피우고는 못 배기는 게 아니라, 중립적인 위치에서 피울지 말지를 결정했을 테다. 그러나 한번 습관이 되고 중독성이 생기면 자기 뜻대로 안 된다. 담배뿐만 아니라 음주나 도박, 마약 등 많은 습관들이 이렇게 형성되어 사람들의 삶을 원치 않은 방향으로 몰아간다.


이런 습관들은 단순히 생각의 차원(뇌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대뇌피질의 차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나쁜 줄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중독 상태에서 헤어나오려면, 생각(대뇌피질)만이 아니라 감정(변연계)과 무의식(뇌간)까지 뇌의 3층구조가 모두 통합되어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뇌파진동이 바로 이러한 방법이다. 뇌파진동은 뇌에서 무조건적으로 처리되는 정보 전달 체계를 물리적으로 끊어버림으로써, 부정적인 뇌회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의식을 중립적인 위치로 되돌려 놓는다. 기존의 뇌회로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뇌회로를 원하는 방향으로 창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나쁜 기질이나 습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뇌파진도을 21일간 꾸준히 해보라고 권한다. 21일은 기존의 원치 않는 습관을 정화하고, 원하는 습관을 체질로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이것은 우리 문화에서 아이가 낳은 산모가 삼칠일동안 금줄을 치고 몸조리를 하는 등의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오늘날에는 합리성을 중시하는 서양에서도 마약 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 재활 치료 기간을 정할 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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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게 물어보라


-나는 철인 소크라테스가 뇌간에서 답을 듣고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현대에 살았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여, 당신의 뇌를 알라!"


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부모님은 내가 말을 배울 때부터 툭하면 "나는 왜 이곳에 있어요? 여기서 뭐 하는 거에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나도 그러한 질문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는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그치고 세상에 적응하여 또래와 어울리는 것에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 이 질문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답은 아무리 오래 매달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본질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시들하고 의미가 없었다. 그저 껍데기로만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슴속은 생의 에너지로 들 끓었다. 그것이 적당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운동에 열중했다. 답답하면 할수록 맹목적으로 운동에 매달렸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때 운동을 좋아했던건 천만다행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의 마을을 잡아서 공부를 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셨다. 요즘 같으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라는 진단을 받았을 텐데, 그때는 그런 병명도 없을 때여서 나는 그저 산만한 아이로 여겨졌다.  책상 앞에 앉으면 단3분도 집중을 못 했으니부모님의 마음 고생이 오죽했겠는가. 생각다 못한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일부러 성적이 좋고 폼행도 단정한 친구와 하숙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공부를 하게 만들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내 룸메이트가 된 그 친구는 정말 모범새이었다. 그는 공부밖에 몰랐다.그러나 부모님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그 친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영향을 받은 것은 오히려 그 친구였다. 사실 어떤 사람이건 내 주변에 며칠만 있으면 염세주의자가 되고 말았는데 그 친구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돌아와도 책상 앞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시간에 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대게 하숙방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누워 있기 일쑤였다. 어느 날 내가 하숙방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누워서 책상 앞에 앉은 그 친구의 뒤통수를 향해 물었다. 


"뭐 해?"

친구는 뒤로 돌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보면 몰라? 공부하잖아"

"공부는 왜 하는데?"

"곧 시험이잖아. 대학고 가야 하고"

"대학 나와서 뭐 하려고?"

"성공해야지"

"성공해서 뭐 할건데?"

"잘살아야지"

"어떻게 사는게 잘사는 건데?


그 즈음에서 친구는 약간 짜증이 난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장난을 거는 게 아니라는 것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화를 내지는 못했다. 친구는 화를 내는 대신 우등생의 본능에 따라 정답을 주려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나름대로 성의껏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뽀족한 대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한참 대답해 보려고 애쓰던 친구는 말을 멈추더니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때 내가 물었다.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 뭘까?

"그러는 너는 알아?

"몰라. 그래서 묻는 거잖아"

"그딴 질문은 그만두고 공부나 하자. 그 문제말고도 풀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게 첫 번째 문제잖아. 모든 게 거기에 걸려 있으니까 그 문제를 풀어야 나머지 다른 문제를 풀 수 있을거 아냐"

"그만하자"


그 친구는 다시 책상을 향해 돌아앉아 책에 얼굴을 묻었따. 그러나 가끔씩 고개가 천장 구석을 삐딱하게 향하곤 하는 뒷모습만 보아도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매사 그런 식이었다. 나랑은 무슨 대화를 하든 몇 마디만 오가면 매번 똑같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래, 좋아. 근데, 우리는 왜 태어났고 왜 사는 거냐고. 그럼, 결국 죽으려고 공부를 한단 말이야? 죽으려고 먹고, 입고, 마시는 거야?

그 친구는 그게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몇 달 뒤 친구는 하숙을 옮겼다. 나중에는 나와 같이 하숙을 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집중력이 없었던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너무 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남들 같으면 어느 지점에서 내려 놓아야 할 질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니까. 그러나 당시에는 집중을 못 한다고만 생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확실히 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신의 뇌에게 끝까지 물어보라

훗날 나는 그때 내가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식의 방법으로 뇌늘 단련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체험이 뇌교육을 정립한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뇌굑육은자기 안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는 공부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정말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행심에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만약 지난날 내가 친구에게 던졌던 질문을 당신에게 똑같이 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당신은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나는 뇌의 3층 구조에 빗대어 설명해보겠다. 처음에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지면, 당신은 대뇌피질에 있는 생각이나 지식 차원에서 답을 들려줄 것이다. 조금 더 물으면 변연계 차원에서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답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몇 발짝만 더 나아가면,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은 물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자기 뇌에게 끝까지 물어야 한다. 그때 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 답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솟아 나온다. 그렇게 올라온 소리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다. 온전히 자기 것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뇌간에서 답을 듣고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새로운 차원의 인식은 자신이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에 눈뜨는 것이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이여, 당신의 뇌를 알라!"


뇌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뇌를 안다는 것, 그것은 곧 나를 아는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때 혹은 힘든 일에 부딪히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당신의 뇌로 돌아가 뇌와 대화하라. 진실하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당신의 마음을 전하라. 당신이 호기심으로 대충 하는 말은 뇌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구할 때, 뇌는 에너지 파동을 통해 당신이 염원하는 것을 알아듣게 된다. 


그 에너지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뇌는 당신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당신의 꿈은 뇌 속에 하나의 씨앗으로 뿌려지고, 그것이 차츰 자라서 나무가 되고 마침내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 가슴이 답답해 질 때마다 곧장 당신의 뇌로 돌아가 뇌와 대화하라. 그리고 습관처럼 늘 이렇게 되뇌어라.

"나에게 뇌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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